East West Center는 1960년 미국 의회가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의 문화 및 기술 교류를 목적으로 설립했습니다. 한국은 설립 초기부터 주요 교류 대상국 중 하나였습니다. 1960년 설립 초반부터 한국의 엘리트 학생들과 연구원들이 EWC의 장학 프로그램 및 연구 위원(Fellow)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식 기록상 1960년 또는 1961년에 파견된 장학생들이 한국인 1세대 동문의 시작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하와이 대학교(UH)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으며 EWC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미국의 선진 학문과 문화를 배우러 떠났던 초기 장학생들의 도전 정신을 느낄 수 있습니다.
당시 동서문화센터 설립의 핵심은 학생교류 ①학생교류 (ISI) ②기술교류 (ITI) ③고급연구 (IAP)였습니다. 이 중 센터의 핵심을 이루는 학생교류계획은 각국에서 학사학위를 갖고 전문직에 종사하는 이들을 선발, 2년동안 50개 분야로 갈려 석사과정을 밟게 하여 자신의 나라로 돌려보내는 것이었습다. 미국과의 학생비례는 2대 1, 매해 아시아, 아프리카 및 태평양지역에서 400명, 미본토에서 200명이 모여 「하와이」대학교에서 위탁교육형식으로 수학했습니다. 1969년 신문에 따르면 설립 9년 만에 300명의 한국인들이 다녀갔다고 집계하고 있습니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207048
1960년대 중반 이미 EWC 출판부(East-West Center Press)에서 "A Short History of Korea" (1964)와 같은 한국 관련 학술서를 배포할 정도로 한국 연구가 활발했습니다.
1960년대 한국의 경제 개발 초기 단계에서 KDI(한국개발연구원) 설립(1971년) 전후로 많은 한국 학자들이 EWC를 거쳐 가며 정책 연구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한국의 경제 성장기와 맞물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가교 역할을 했던 1970-1980년대에는 한국 경제의 주요 동력 인재로서 활동하였습니다. 한국 경제의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의 초대 회장인 김만제 박사가 한국 경제 정책의 과학화를 주도한 것을 필두로 사공일 박사, 세계 경제 연구원 이사장으로 한국 경제의 글로벌화를 이끌었습니다.
KDI가 설립될 때,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지원을 받는 과정에서 EWC와 하와이대에서 경험한 '학문적 자율성' 모델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부 산하 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연구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미국 학계 시스템을 경험한 EWC 출신들의 철학이 깔려 있었습니다.
1970-1980년대 EWC 출신 학자들은 연구 보고서와 컨퍼런스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경제 협력'에 관한 논의를 주도했습니다. 이는 훗날 한국이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등 국제기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외교적 자산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는 탈냉전 시대를 맞아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이 두드러졌습니다.
동북아 경제협력체 구상: 1990년대 초, EWC는 한국 학자들과 함께 '두만강 개발 계획'이나 '동북아 경제권' 형성을 위한 담론을 주도했습니다. 이는 한국이 대륙과 해양을 잇는 가교 국가로 거듭나는 이론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언론인 교류의 전성기 (Jefferson Fellowships): 1990년대 한국 언론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많은 중견 언론인들이 EWC의 '제퍼슨 펠로우십'을 통해 미국 및 아시아 언론인들과 교류했습니다. 이들은 귀국 후 한국 언론의 국제적 시각을 넓히는 데 기여했습니다.
EWC는 아시아 문화 교류의 허브로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학술적으로 분석한 초기 기관 중 하나입니다. 한국 문화 정책 전문가들이 EWC를 거치며 '소프트파워'의 전략적 중요성을 학습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기후 변화와 에너지 안보 문제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환경 정책 전문가들과 EWC 연구진이 협력하여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지속 가능한 발전 모델을 연구했습니다.